말씀묵상을 하면서

말씀을 뜯어볼 때나 크게 통째로 가늠을 해 볼려고 노력을 할때나

목사님의 가르침대로

문제를 풀어가고 의문을 가져보는

필연이 나타난다.

 

다니엘이라는 친구를 두고 있는

다니엘의 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참 복 받은 사람이었다.

 

나에게도

다니엘과 같은 친구가 있어

믿음의 본이 되며,

함께 결단하며

함께 주님과 동행하는 즐거움과 은혜를 나눌수 있기를 기대한다.

 

다니엘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결단함으로

결국은 하나님을 뜻을 저버리지 않고도

세상적으로도 인정을 받는 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 친구들은

 

금 신상에 절하지 않으면 풀무불에 던져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도

 

"능히 너희를 내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이겠느냐"하는 물음에도

 

"답할 필요가 없다"하면서

"풀무불 가운데서 건져내실 것이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신다."

라며 믿음의 자세를 취한다.

결단과 행함이 있는 믿음의 자세를 보일수 있게 된것이다.

 

또한 풀무불에 던져진 세 친구는

몸이 해하지 않았고,

머리털도 그을리지 않았고,

불 탄 냄새도 없었다 한다.

 

급기야 느부갓네살 왕이 세친구의 하나님을 찬송하라 하며,

그들의 하나님 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않았다 하고,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다 한다.

 

그러면서

느부갓네살왕이 세 친구를 높이면서

"이 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니라"라고 한다.

 

여기서

"이 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다 하지않고,

이같이 사람을 지킬 다른 신이 없다 해도 상황에 벗어나지 않는 표현이고,

이같이 사람을 구해줄 수 있는 다른 신이 없다 할수도 있었을 것이나

 

성경말씀에서는 구지 " 이 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다."라고 콕 찍어서 표현을 했을까라고 의문을 가졌다.

 

느부갓넷살의 입을 통한 말이지만

죽을수 밖에 없는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 구속의 역사를 이루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제대로 의지했을때,

다른 신을 섬기지 않았을때,

 

구원을 이루신다.

새생명을 주신다 함을 예표하는 사건이라고 생각했다.

 

신약에서 ,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죄사함을 받는 구원의 완성이 이루어지는 그 과정에서의

구약의 사건 하나로 이해했다.

 

어거지로 끼워맞춘것이면 어떡하나 싶지만.

 

바벨론의 왕이 인정하는 하나님의 백성,

이세상에서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 저 사람은 뭔가 달라, 예수가 뭔지는 몰라도 저 사람은 믿는사람다워" 라고

불리워 질수 있으면 좋으련만

 

자신이 없다.

겉으로는 그럴싸해보이는 것같은데

하나님 앞에만 서면

여실히, 여전히 드러나는 흉과 허물들이 너무 더럽고 추악하다.

감출수는 없는데,

회개는 하는데,

세상가운데서 변화 되기가, 나를 죽이기가 쉽지 않다.

 

정말 이것만은 안될 것같은 싶은것이 있다.

 

주님 다듬어 가시옵소서.

지금 제상황이 그것을 다듬는 것이라면

어쩌죠?

이 상황이 길어질텐데.

그러면 결국은 제가 괴로운데.

 

주님, 변화될 수 있게 힘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