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한절 한절로

나의 여호와 하나님이 나에게 요구하시는 바를

깨닫게 하신 시간들에서

희열과 감사와 은혜가 넘쳐나면서

 

언제가부터는 통으로 일정분량 이상을 전체의 흐름을 알고,

어느때에 어떤 결단이 있었고,

어느 시기에 무슨 일을 피해가는 지혜를 발휘했는지 하는것을

깨닫게 되는 은혜를 사모하게 되었다.

 

한절, 한절에도 무너지지만

그것은 내가 실제로 모르고 있었던 것을 깨닫게 되고

마음으로라도 자세 전환을 하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지만,

 

그렇게 깨달은 말씀의 한절, 한절로 얻은 믿음의 방향들이

제대로 색깔을 발휘할려면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사건앞에서

이런 방향이 아니라

저런 방향으로

살것을 다짐하고 실천해볼수 있는 본을 찾을수 있는것이

말씀을 통으로 이해하고,

전체흐름으로 사건을 이해함으로써 얻어지는 은혜이고 수확이리라.

 

그런데, 참 쉽지가 않다.

두세줄 읽다가 보면 앞의 첫쨋줄은 벌써 잊어비리고 말았다.

그래서 또 읽고 또 읽어야 된다.

그래도 이렇게 알고싶으면 알게 해 주시리라 믿는다.

 

설교말씀으로 많이 들었던 다니엘과 세친구의 이야기인데

문득 어떻게 다니엘이 그렇게 결단할 수 있었을까 싶었다.

태어나면서부터 그렇게 결단한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고.

 

이스라엘이 바벨론에게 멸망을 하고

포로로 끌려간 싯점에,

느부갓네살왕이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고

이스라엘성전의 그릇을  가져다가 바벨론왕의 신전에 가져가 보물창고에 두었던 싯점에,

 

이스라엘 자손중에서 왕족과 귀족을 뽑아 키우기 시작하신다.

 

세상적으로 참 이해하기 어려운 처세이다.

예루살렘을 멸망시켰으면

자라나는 싹도 죽이기나 적어도 우민정책으로 가르치는 일은 하지 말아야

제대로된 멸망이 되는 것이 아닌가?

이것만 봐도 예루살렘을 멸망이

하나님이 진짜 예루살렘의 멸망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깨우치기 위한 한 가지 방법이라는 것이 자명하다.

 

우리모두는 보통

대세가 기우는 것같으면 절망부터 하고,

다른 대안을 찾기 바쁘다.

발빠르게 새로운 준비를 한다는 건설적인 명분을 붙혀가며.

그러나 우리의 영을 지켜나가는 방법은,

우리의 신앙을 지켜나가는 방법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은 그것이 아니다.

 

이스라엘 성전의 그릇마저도 바벨론 신전에 넘어갔다고 탄식할것이 아니라,

이제 다 죽었구나 할것이 아니라

우리 성전의 그릇을 자기들 보물창고에 둘만큼 소중하게 생각하는구나,

이스라엘이 특별한 줄을 아니까

아이들을 키우기를 원하구나 라고

 

메마른 가지를 꺽지 않으신다는 하나님 말씀을 되새길줄 하는 새생명을 향한

소망과 기대와 포부를 담대히 가져야한다는 것을 가르치시며

깨닫기를 원하신다.

 

또한 아무리 왕을 통하여 특수학교를 준비하여도

다니엘의 결단이 없었다면

바벨론은 그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왜 특별한 가를 알수 없었으리라.

 

준비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지만

도구로 사용하시는 것은 인간이라는 것이 다시한번 드러나는 사건이다.

 

도구로 사용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준비가 되어있는가를 묻지 않을수 없다.

 

주님!

나의 여호와 하나님!

 

마른 뼈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는 하나님!

메마른 가지를 꺽지 않으시는 하나님!

연약하고 부족한 우리를

마음의 중심만 보시고

사용하시는 하나님!

 

끝까지 사랑하겠습니다.

세상가운데서 잠시  힘이 들때도

주님 생각하게 하시니,

구원백성삼아주신것에 감사하게 하시니

진짜 신기하고 기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