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1월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할수없이, 아니면

그 힘에 이끌려서 교회의 문턱은 드나들었지만

참 알수없는 것이 예수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으라는 것이었는데

어떻게 그것을 믿을수 있다는 말인가?

나는 도저히 그럴수없었다.

그래서 세례는 더더구나 받을 수 없었다.

 

그렇게 교회의 문턱을 밟기 전에는 교회다니는 사람들이 참 우매해보이고 우스웠다.

도대체......

그러나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것은 믿을수 없었지만

교회 문턱은 드나들어야했다.

알수없는 이끌림과 가야만 될것같은 압박감,

99년 11월의 인도가 너무나도 확실하고 무서웠기 때문에

우주만상을 총괄하는 절대자로서의 하나님만을 인정했던 25년시간과는 다른

하나님이

99년 11월부터 나의 가슴에는 줄곧 살아있었다. 아니 살아계셨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했던가?

한국에서 교회를 다닐때는

성경공부는 거부하고, 예배만 보는데 시들시들,

도대체 나에게 믿음은 무엇이었단 말인가?

 

미국을 와서는

삶이 참 단순해지면서

삶이 참 팍팍해지면서,

말같지 않은 일로 원망을 듣고, 불평을 들으면서

나에게는 위로받는 고향이 필요했고,

말씀은 도대체 말같지 않았지만

 

단 하나, 나의 뿌리,

단 하나,  그때까지 (2008년 3월) 남아있었던 주님의 끈이라면

이사야 43장 1절, 2절말씀 (물론 최근에야 그 말씀으로 만들어진 찬양이라는것을 알았다.)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것이라"

 

이 찬양이 예배중 나올때면

나는 어김없이 울고 있었다.

나스스로도 참 이상하다고 머리로는 생각했다.

나는 허깨비 신앙인인데.

나는 예수를 나의 구주라고, 나의 주인되신다고, 나의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하지도 않았고,

고백할 수도 없는

믿음이 없는 날나리 신앙인인데

이 구절의 말씀의 찬양이 나오면 운다는 것이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내 머리로 이해는 안되지만

내 가슴은 이미 적셔져있었음을 부인할 수없었다.

 

이제 보니 그것이

오늘 말씀묵상 구절

"여호와께서 태에서부터 나를 부르셨고" 처럼

주님은, 나의 여호와 하나님은

내가 주님께 돌아오기를 끊임없이 부르고 계셨던 것이라는 말씀으로 알게된다.

 

그렇게

가슴으로는 나에게로 다가오시는 주님의 손짓을 거부할수 없었지만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되어서

믿음이랄 것도 없이

예배당만 챗바퀴돌듯이 들락날락 한것이었다.

 

그러다 비지니스 때문에 자연스럽게 1년반을 교회를 , 예배를 볼수없게 되었고,

내 삶은 끝이 보이지 않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을때

왠지 예배는 봐야될것 같은 막연한 생각에

크리스찬 타임지에 난 교회탐방기사를 보고

위치가 가깝고,

예배시간이 맞아서,

무턱대고 찾아간 교회,(2009년 11월 16일)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정말 놀랍고 신기하지만,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은혜를 경험하고 있는

선한목자교회에서

 

도대체 머리로 이해가 안되었던 것이

실타래 풀어지듯 풀어지면서

나의 신앙생활은 날개를 달기 시작했다.

 

주님,

예수 그리스도, 나의 구세주이신 하나님 아버지!

 

태에서부터 저를 부르셨던 나의 여호와 하나님!

이 완악했던 저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부르셨음에 감사합니다.

 

그렇게 머리로 이해할 수없었던

말씀들을

실타래처럼 풀어내어 저를 깨우치게 하신 박일종 목사님을 만나게 하신것에 감사합니다.

 

이런 시간적흐름으로 오늘 여기까지 오게 하신 주님의 뜻이 있을 줄 믿습니다.

 

그 주님의 뜻이,

저처럼 머리가 커서, 머리가 완악하여  믿지 못하는 많은 영혼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능력 깨닫게 하며,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의 소망이라는 것을 알게하며,

죽을 생명이

다시 새생명을 얻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가시는 길에 있음을 믿습니다.

 

손이 발이되도록 섬기겠습니다.

손이 발이되도록 충성하겠습니다.

사용하시옵소서.

 

선한목자교회가

그 기쁨의 통로,

그 생명의 통로,

그 평강의 통로,

그 사랑의 통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박일종 목사님의

성경말씀 가르침으로

많은 젊은이들이 뒤집어지고,

세상을 품는 소망이 생기게 하시옵소서.

그 통로로 쓰임받기를 원합니다.

주님 사용하시옵소서.

 

예수를 모르던 청년들이,

예수를 우습게 보던 청년들이

이사야 43장 1절말씀을 찬양하며 눈물을 흘리는 그날까지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주님!

태에서부터 저를 포기하지 않고 부르신 신실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인제는 영원히 의지하겠습니다.

양다리 걸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